명상일기/명상일기

삶은 하나의 펼친 손이다.

후쿠시아 2013. 2. 4. 17:06

삶에 대한 첫번째의 것은, 그것은 설명이 없다는 것이다.

삶은, 그곳에, 그 절대적인 영광 속에 있다. 그러나 거기 설명은 없다.

그것은 하나의 신비처럼 존재한다.

그대가 설명을 꾀하면 그때 그대는 삶을 놓쳐 버릴 것이다.

삶은 설명되어질 수가 없다.

다만 그대는 그대의 설명을 통해 눈멀게 될 것이다.

 

철학은 삶의 적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유해한 일은 고정되고 설명에 사로잡히는 일이다.

그대가 설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삶은 그대를 떠나 있고, 그대는 이미 죽어 있다.

 

이것은 하나의 역설처럼 보일 것이다. 죽음은 설명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삶은 설명될 수 없다.

죽음은 끝이난, 완성된 무엇이고, 삶은 언제나 진행되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삶은 언제나 그 여행길에 있다.

그러나 죽음은 이미 도달해 있는 것이다.

어떤 것이 도달해서 마무리되면 그대는 그것을 설명할 수 있고,

그것을 한정할 수 있다.

어떤 것이 아직 진행 중일 때는 그것은 여행해야 할 미지의 것이 아직 남이 있다는 의미이다.

 

그대는 과거를 알 수는 있지만 미래는 알 수 없다.

그대는 과거를 이론으로 정립해 놓을 수 있다.

그러나 미래를 어떻게 이론화할 수 있을까?

 

미래는 항상 열려 있음이며 무한한 열림이다.

그것은 계속해서 열려지고 열려진다.

그러므로 그대가 설명을 할 때 그 설명은 언제나 죽어 있는 것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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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은 꽉 쥔 주먹과 같다.

그리고 삶은 하나의 펼친 손이다.

그들은 전적으로 다르다.

주먹이 닫혀 있을 때, 그 안에는 하늘이 없고, 공기도 없으며, 숨쉴 공간도 없다.

그대는 그대의 쥔 주먹 속에 하늘을 움켜잡을 수 없다.

그 주먹은 하늘을 놓쳐 버린다.

 

하늘이 거기 있고, 그대의 손은 열려 있을 때, 그때 그대는 손에 넣을 수 있다.

설명은 움켜잡는 것, 문닫음, 한정짓는 것이다.

그때 삶은 새어나간다.

 

웃음이라 해도 차라리 철학보다는 위대하다.

어떤 사람이 삶에 대하여 웃을 때 그는 곧 삶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진정으로 깨달은 사람들은 웃었다.

그리고 그들의 웃음은 몇 세기 이후까지도 들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