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상식/기타
여행작가 오소희의 아들과 함께 여행하는 법
후쿠시아
2013. 3. 22. 17:43
지구촌 구석구석 누빈 여행작가 오소희의 아들과 함께 여행하는 법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인 중빈이는 자신의 나이보다도 그동안 여행을 다녀온 나라의 수가 훨씬 많다. 네 살 때부터 지금까지 10년 동안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제3세계 국가를 중심으로 무려 25개국에 발 도장을 찍었다. 어린 나이에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타고 내리며 매번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세상 그 누구보다 든든한 존재인 엄마와 함께했기에 더 용기 있게 모험을 즐길 수 있었다.
누구나 마음먹기에 달렸다
중빈이(13)의 엄마 오소희씨(43)는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주부였다. 대학 졸업 후 1년 반 동안 광고회사에 잠깐 다니기는 했지만, 결혼을 하고 육아에 전념하면서부터는 전업주부의 빡빡한 일상과 자유로운 백수의 촘촘한 경계를 넘나들기에 바빴다. 그러다가 아이가 만 세 돌이 되던 무렵, 육아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랠 겸 집 안에서 벗어나 바깥세상으로 좀 더 멀리 나가고 싶어졌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바로 여행이었다.
"남편은 직장 때문에 쉽게 떠날 수가 없으니까 저 혼자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가야 하는 상황인데, 아이가 별 무리 없이 다닐 수 있을 만큼 클 때까지 기다리자니 대체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르겠더라고요. 장기 여행을 생각한 경우에는 더 그렇죠. 그래서 그냥 마음이 내키는 대로 일단 출발하기로 했어요. 이제 막 네 살이 된 아들을 데리고 말이죠."
평소 여행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남편은 그녀의 뜻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줬다. 기본적으로 아내에 대한 믿음이 큰 이유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내와 아이를 통해 여행에 대한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그렇게 무작정 떠난 첫 여행지는 터키였다. 동서양의 문화가 공존해 있어 역사적·문화적으로 보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많을 뿐만 아니라 자연이 잘 보존돼 있는 덕분에 어린 아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들과 여행을 갈 때 좀 더 편리하고 보호시설이 잘 갖춰진 선진국을 선호하는 편이지만 저는 생각이 달랐어요. 여행을 가서도 아이를 한정된 공간에 가둬놓기보다는 탁 트인 곳에 풀어놓고 싶었거든요. 그런 점에서 터키는 저랑 아이를 모두 충족시켜주는 곳이었어요. 10년 전까지만 해도 터키는 관광도시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지금보다 발전이 훨씬 덜 돼 있고 그만큼 자연경관이 훌륭했어요."
한국을 떠날 때까지만 해도 오소희씨는 '혹시라도 중간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곧바로 돌아오면 돼'라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편한 마음으로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겨우 네 살밖에 안 된 아이를 데리고 여행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그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터키 여행은 생각보다 훨씬 길어졌고, 처음에 계획했던 한 달 일정을 꽉 채웠다.
"유모차도 없이 둘이서 열심히 걷고, 보고, 느꼈어요. 아무래도 아이랑 여행을 하면 기존의 관광 형태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어요. 아이가 한참 걷다가 땅에 있는 개미를 쫓아 움직이기 시작하면 저도 덩달아 쭈그리고 앉아서 개미들을 쳐다봐요. 나무 한 그루를 보더라도 아이가 '여기 이렇게 멋진 나무가 있구나' 하면 아이와 나무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고요."
오소희씨와 중빈이는 어딜 가나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 당시만 해도 터키를 여행하는 동양인이 드물었을 뿐만 아니라 어린 아들이 엄마랑 나란히 배낭을 메고 아장아장 걸어 다니면서 여행을 하는 모습은 무척이나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현지인들로부터 더욱 따뜻한 관심과 도움을 받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이랑 여행을 다니니까 사람이 여행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왔어요. 먼저 다가와서 아이가 몇 살인지, 엄마랑 어떤 여행을 하고 있는 건지 등등 말을 걸면서 이것저것 물어봐주더라고요. 지나가다가 발길을 멈추고는 중빈이를 번쩍 들어서 뽀뽀하는 외국인들도 있었고요."
경계 없이 사랑하고 즐기며 나눠라
터키 여행을 계기로 '사람 여행'에 더 큰 매력을 느낀 두 사람은 잘 알려진 관광지보다는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미얀마, 시리아, 우간다 등 제3세계 국가들만 골라 다녔다.
"그런 나라들에는 따로 놀거리가 없어요. 사람뿐이에요. 그래서 여행을 가더라도 그곳 사람들과 직접 교류할 수밖에 없어요. 함께 어울리면서 온갖 보디랭귀지를 섞어가며 의사소통을 하고, 또래 아이들과 공놀이를 하면서 몸과 마음으로 대화를 하는 식으로요. 중빈이를 귀엽게 본 아주머니들이 자기 집 대문을 열면서 같이 들어가 차를 마시자고 호의를 베푼 적도 여러 번이에요."
낯선 곳으로 떠난 여행이 신기하면서도 두려울 법도 한데 오히려 중빈이는 엄마보다도 담담했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깨우치기도 전에 매번 새로운 문화들을 경험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 부딪히며 유연하게 대처하는 법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먼저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라마다 언어가 다를 뿐 그 밖에 크게 다른 것은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걱정되거나 무서웠던 적이 없어요. 여행을 다녀보니까 모든 나라는 각자의 개성이 있을 뿐이지 특별히 좋고 나쁜 것은 없더라고요. 그 개성에만 익숙해지면 돼요. 물론 맨 처음에는 그 나라의 모든 것에 적응하기 힘들어요. 하지만 그 나라의 성격을 알기 시작하면, 새로운 나라를 여행하는 것이 마치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과 비슷해져요. 그때부터 즐기면 되고요. 모든 나라에는 즐길 게 있어요. 다이빙이든, 시장이든, 뭐든지 한 개씩은 꼭 있게 마련이거든요."
여행을 하면서 주로 '이번에는 어떤 친구를 사귈까?' 하는 생각을 가장 많이 한다는 중빈이는 여섯 살 때까지는 축구공을 가지고 다니며 도착하는 곳마다 동네 아이들과 축구판을 벌였고, 일곱 살 때부터는 바이올린을 들고 다니면서 필리핀 바닷가 코코넛 나무 아래에서, 혹은 아프리카의 고아원에서 생전 처음 구경하는 친구들을 위해 작은 음악회를 열기도 했다. 중빈이의 연주가 시작되면 신기한 현악기를 보러 동네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었고, 그들은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클래식 음악에 열광적인 환호를 보내주었다. 호기심이 다할 때까지 직접 악기를 만져보거나 연주해보는 아이들도 있었다. 중빈이에게 바이올린은 국경을 초월한 따뜻한 우정을 맺을 수 있게 해주는 훌륭한 나눔의 도구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지난 10년간 무려 25개국을 다녀왔다. 단순히 좋은 것을 구경하기만 하는 '관광'이 아니라 '사람과의 교감'을 중심으로 한 여행을 했기 때문에 두 사람은 발길이 닿았던 곳마다 두고두고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들을 남겼다. 그중에서도 중빈이는 가장 최근에, 가장 오랫동안 다녀온 90일간의 남미 여행을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으로 꼽았다. 페루, 볼리비아, 브라질, 콜럼비아, 칠레, 에콰도르 남미 6개국을 다니며 울고 웃었던 일들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고 한다.
"볼리비아에 있는 라파스라는 도시의 길거리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했던 게 여행을 다니며 가장 행복했던 일이었어요. 그동안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바이올린을 연주한 적은 많지만, 거리의 악사가 되어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거든요. 한 명, 두 명 점점 사람들이 몰리더니 바닥에 둔 바이올린 케이스에 동전을 넣어줬어요. 연주를 다 마치고 났을 때는 동전이 가득 쌓여 있었는데 현지 돈으로 35볼리비아노, 미국 돈으로 5달러 정도였어요. 볼리비아에서는 하루 동안 충분히 생활할 수 있을 만큼 큰돈이었죠. 하지만 돈의 액수보다도 저를 에워싼 사람들이 저를 쳐다보던 눈빛이 무척 좋았어요. 그 눈빛들이 굉장히 선했고, 저까지도 매우 착한 사람처럼 느껴지게 만들었거든요."
마음의 성장 그리고 여행이 남기는 선물
어릴 적부터 꾸준히 여행을 다닌 덕분에 중빈이는 또래 아이들보다 더 큰 용기와 자신감을 갖게 됐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 부딪히면 겁에 질리기보다 스스로 해결해나가려고 노력하고, 오히려 뭔가 해낼 수 있다는 마음으로 그 순간들을 기꺼이 즐겁게 받아들인다.
"중빈이의 변화는 생활 속에서 소소하게 느낄 수 있어요. 예전에 이사 때문에 전학을 시킨 적이 있는데, 아무래도 학교를 옮기면 친구들, 교실, 선생님까지 모두 어색하게 마련이잖아요. 낯선 환경에서 아이가 의기소침하면 어쩌나 하고 우려했는데, 중빈이가 저더러 '엄마, 걱정하지 마. 그런 건 시간이 다 해결해줘. 다른 나라에서는 말도 안 통하는 아이들과 친구가 됐었잖아'라고 하더라고요."
누구에게나, 어떤 상황에서나 선입견이나 경계를 두고 판단하지 않고 세상을 활짝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 또한 여행이 가져다준 선물이다. 실제로 중빈이는 한국에서 만나는 외국인들에게도 거리낌 없이 먼저 다가가 인사를 하고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라고 물으며 말을 건넨다고 한다. 영어 공부라고는 학원 대신에 집에서 영어 동화책을 꾸준히 읽고, 여행을 다니며 단어와 표현들을 생활 속에서 익힌 게 전부다. 그럼에도 중빈이는 언어와 사람에 대한 두려움 없이 여유를 보인다.
"저는 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학교를 다니는 것보다 계속 여행을 하는 게 세상에 대해 훨씬 더 많이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동안에도 그랬고요. 다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하는 법도 여행을 통해 배웠어요. 한국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 외국 사람들한테는 자연스러울 수 있거든요. 그 나라에 가서 그곳의 사람들과 같이 생활하다 보면 입장을 바꿔보는 훈련이 돼요. 그러면서 세상의 불공평함 그리고 감사를 배우기도 했어요. 여행을 다니며 만난 제 또래의 아이들 중에는 엄마 옆에서 장사를 돕느라 글을 아예 배우지 못한 경우가 굉장히 많았거든요. 지금 이렇게 제 이야기를 듣고 볼 수 있는 친구들은 참 운이 좋은 거예요."
오소희씨는 아들과 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그 이야기들을 책으로 펴내며 여행작가로 등단했다. 그리고 책을 통해 얻는 인세를 여행 경비에 재투자하고, 또 일부분은 그동안 여행했던 제3세계 국가들에 청소년 도서관을 짓는 데 꾸준히 사용하고 있다.
"여행을 다니면서 그곳 사람들의 순수함에 감동을 받거나 가난 때문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울었던 적이 많았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로부터 참 많은 걸 배우고 얻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저와 아이의 가방을 보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만 가득 담겨 있더라고요. '이기적인 가방'이었죠.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짐을 반으로 줄이고 남는 자리에 여행지에서 만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학용품이나 옷 등의 선물을 담아갔어요. 그러다가 2008년부터는 아예 도서관 짓기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고요."
벌써 3개의 도서관이 지어졌고, 조만간 남미 볼리비아에 네 번째 도서관이 완성될 예정이다. 오소희씨는 도서관을 채울 책들을 마련하는 데도 직접 나서고 있다. 한국의 독자들로부터 중고 영어책과 도서 구입 성금을 기부받아서 현지로 배송한다. 얼마 전부터는 중빈이도 합세했다. 남미에서 보낸 90일 동안의 여행 일기를 모아 책을 펴낸 중빈이가 자신의 책에서 나온 인세를 전액 기부하기로 한 것이다.
"저도 세상을 보고 기억으로 가져가지만, 저도 세상에 줄 수 있는 게 있어서 좋아요."
오소희씨와 중빈이의 여행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녀는 행복한 사람들이 많은 곳을 찾아 다음 여행지로 행복 지수 1위를 자랑하는 나라 부탄을 기대하고 있고, 중빈이는 극지 탐험을 꿈꾸며 알래스카에 가자고 엄마를 조르는 중이다. 어떤 사람들은 여행에 들어가는 적지 않은 비용을 운운하며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하기도 하지만, 그녀는 "삶의 우선순위가 다를 뿐 누구나 마음먹으면 가능하다"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집이나 차, 그 밖에 인생의 다른 목표를 위해 돈을 모으고 쓰는 것보다 사람과 여행에 투자하며 살아가는 힘을 얻는 것이 훨씬 더 행복하기 때문이란다. 우리가 몰랐던 세상의 또 다른 즐거움을 전해줄 엄마와 아들의 다음 여정이 더 기대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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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빈이(13)의 엄마 오소희씨(43)는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주부였다. 대학 졸업 후 1년 반 동안 광고회사에 잠깐 다니기는 했지만, 결혼을 하고 육아에 전념하면서부터는 전업주부의 빡빡한 일상과 자유로운 백수의 촘촘한 경계를 넘나들기에 바빴다. 그러다가 아이가 만 세 돌이 되던 무렵, 육아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랠 겸 집 안에서 벗어나 바깥세상으로 좀 더 멀리 나가고 싶어졌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바로 여행이었다.
"남편은 직장 때문에 쉽게 떠날 수가 없으니까 저 혼자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가야 하는 상황인데, 아이가 별 무리 없이 다닐 수 있을 만큼 클 때까지 기다리자니 대체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르겠더라고요. 장기 여행을 생각한 경우에는 더 그렇죠. 그래서 그냥 마음이 내키는 대로 일단 출발하기로 했어요. 이제 막 네 살이 된 아들을 데리고 말이죠."
평소 여행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남편은 그녀의 뜻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줬다. 기본적으로 아내에 대한 믿음이 큰 이유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내와 아이를 통해 여행에 대한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그렇게 무작정 떠난 첫 여행지는 터키였다. 동서양의 문화가 공존해 있어 역사적·문화적으로 보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많을 뿐만 아니라 자연이 잘 보존돼 있는 덕분에 어린 아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들과 여행을 갈 때 좀 더 편리하고 보호시설이 잘 갖춰진 선진국을 선호하는 편이지만 저는 생각이 달랐어요. 여행을 가서도 아이를 한정된 공간에 가둬놓기보다는 탁 트인 곳에 풀어놓고 싶었거든요. 그런 점에서 터키는 저랑 아이를 모두 충족시켜주는 곳이었어요. 10년 전까지만 해도 터키는 관광도시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지금보다 발전이 훨씬 덜 돼 있고 그만큼 자연경관이 훌륭했어요."
한국을 떠날 때까지만 해도 오소희씨는 '혹시라도 중간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곧바로 돌아오면 돼'라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편한 마음으로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겨우 네 살밖에 안 된 아이를 데리고 여행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그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터키 여행은 생각보다 훨씬 길어졌고, 처음에 계획했던 한 달 일정을 꽉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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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희씨와 중빈이는 어딜 가나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 당시만 해도 터키를 여행하는 동양인이 드물었을 뿐만 아니라 어린 아들이 엄마랑 나란히 배낭을 메고 아장아장 걸어 다니면서 여행을 하는 모습은 무척이나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현지인들로부터 더욱 따뜻한 관심과 도움을 받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이랑 여행을 다니니까 사람이 여행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왔어요. 먼저 다가와서 아이가 몇 살인지, 엄마랑 어떤 여행을 하고 있는 건지 등등 말을 걸면서 이것저것 물어봐주더라고요. 지나가다가 발길을 멈추고는 중빈이를 번쩍 들어서 뽀뽀하는 외국인들도 있었고요."
경계 없이 사랑하고 즐기며 나눠라
터키 여행을 계기로 '사람 여행'에 더 큰 매력을 느낀 두 사람은 잘 알려진 관광지보다는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미얀마, 시리아, 우간다 등 제3세계 국가들만 골라 다녔다.
"그런 나라들에는 따로 놀거리가 없어요. 사람뿐이에요. 그래서 여행을 가더라도 그곳 사람들과 직접 교류할 수밖에 없어요. 함께 어울리면서 온갖 보디랭귀지를 섞어가며 의사소통을 하고, 또래 아이들과 공놀이를 하면서 몸과 마음으로 대화를 하는 식으로요. 중빈이를 귀엽게 본 아주머니들이 자기 집 대문을 열면서 같이 들어가 차를 마시자고 호의를 베푼 적도 여러 번이에요."
낯선 곳으로 떠난 여행이 신기하면서도 두려울 법도 한데 오히려 중빈이는 엄마보다도 담담했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깨우치기도 전에 매번 새로운 문화들을 경험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 부딪히며 유연하게 대처하는 법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먼저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라마다 언어가 다를 뿐 그 밖에 크게 다른 것은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걱정되거나 무서웠던 적이 없어요. 여행을 다녀보니까 모든 나라는 각자의 개성이 있을 뿐이지 특별히 좋고 나쁜 것은 없더라고요. 그 개성에만 익숙해지면 돼요. 물론 맨 처음에는 그 나라의 모든 것에 적응하기 힘들어요. 하지만 그 나라의 성격을 알기 시작하면, 새로운 나라를 여행하는 것이 마치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과 비슷해져요. 그때부터 즐기면 되고요. 모든 나라에는 즐길 게 있어요. 다이빙이든, 시장이든, 뭐든지 한 개씩은 꼭 있게 마련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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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두 사람은 지난 10년간 무려 25개국을 다녀왔다. 단순히 좋은 것을 구경하기만 하는 '관광'이 아니라 '사람과의 교감'을 중심으로 한 여행을 했기 때문에 두 사람은 발길이 닿았던 곳마다 두고두고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들을 남겼다. 그중에서도 중빈이는 가장 최근에, 가장 오랫동안 다녀온 90일간의 남미 여행을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으로 꼽았다. 페루, 볼리비아, 브라질, 콜럼비아, 칠레, 에콰도르 남미 6개국을 다니며 울고 웃었던 일들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고 한다.
"볼리비아에 있는 라파스라는 도시의 길거리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했던 게 여행을 다니며 가장 행복했던 일이었어요. 그동안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바이올린을 연주한 적은 많지만, 거리의 악사가 되어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거든요. 한 명, 두 명 점점 사람들이 몰리더니 바닥에 둔 바이올린 케이스에 동전을 넣어줬어요. 연주를 다 마치고 났을 때는 동전이 가득 쌓여 있었는데 현지 돈으로 35볼리비아노, 미국 돈으로 5달러 정도였어요. 볼리비아에서는 하루 동안 충분히 생활할 수 있을 만큼 큰돈이었죠. 하지만 돈의 액수보다도 저를 에워싼 사람들이 저를 쳐다보던 눈빛이 무척 좋았어요. 그 눈빛들이 굉장히 선했고, 저까지도 매우 착한 사람처럼 느껴지게 만들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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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꾸준히 여행을 다닌 덕분에 중빈이는 또래 아이들보다 더 큰 용기와 자신감을 갖게 됐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 부딪히면 겁에 질리기보다 스스로 해결해나가려고 노력하고, 오히려 뭔가 해낼 수 있다는 마음으로 그 순간들을 기꺼이 즐겁게 받아들인다.
"중빈이의 변화는 생활 속에서 소소하게 느낄 수 있어요. 예전에 이사 때문에 전학을 시킨 적이 있는데, 아무래도 학교를 옮기면 친구들, 교실, 선생님까지 모두 어색하게 마련이잖아요. 낯선 환경에서 아이가 의기소침하면 어쩌나 하고 우려했는데, 중빈이가 저더러 '엄마, 걱정하지 마. 그런 건 시간이 다 해결해줘. 다른 나라에서는 말도 안 통하는 아이들과 친구가 됐었잖아'라고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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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다니면서 그곳 사람들의 순수함에 감동을 받거나 가난 때문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울었던 적이 많았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로부터 참 많은 걸 배우고 얻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저와 아이의 가방을 보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만 가득 담겨 있더라고요. '이기적인 가방'이었죠.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짐을 반으로 줄이고 남는 자리에 여행지에서 만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학용품이나 옷 등의 선물을 담아갔어요. 그러다가 2008년부터는 아예 도서관 짓기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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