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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문법적인 성격: 대명사, 관형사, 부사

후쿠시아 2012. 12. 22. 14:01

 

'저'의 문법적인 성격: 대명사, 관형사, 부사

 

 (1) 저 멀리 새가 날아간다.

(1)에서 ‘저’의 문법적인 성격에 대하여 질문하셨습니다.

먼저, 일반적으로 ‘저’는 대명사나 관형사로 쓰입니다.

(2) ㄱ. 이도 저도 다 싫다.
ㄴ. 지금 저들이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3) ㄱ. 저기 저 여자
ㄴ. 저 거리에는 항상 사람이 많다.
ㄷ. 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라.
ㄹ. 저 산을 넘어야 한다.
ㅁ. 저 아이는 누구 집 아이입니까?
ㅂ. 월출 가는 길이 아랩니까, 저 윗길입니까?


(2)는 대명사로 쓰인 예이고, (3)은 관형사로 쓰인 예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반적인 쓰임 이외에도 다음과 같이 부사 ‘멀리’ 앞에서 ‘저’가 쓰여서 거리가 매우 멀다는 느낌을 주는 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4) ㄱ. 저 멀리 새가 날아간다.
ㄴ. 저 멀리 많은 차량이 오가는 국도 위는 아직 대낮에 속했다.

(4)와 같은 문장에서 ‘저’는 ‘멀리’를 수식하지 ‘새’나 ‘차량’를 수식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점으로 보면 ‘저’라는 관형사가 ‘멀리’를 수식하는 셈이 되어서, 관형사가 부사를 수식하는 극히 예외적인 예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현재의 규범 문법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4)와 같은 문장에서 ‘저’의 문법적인 성격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다른 규범 문법과는 다른 방식으로 설명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먼저, (4)의 ‘저’는 일반적인 대명사와 관형사와는 다르게 쓰이는 말인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곧 (4)의 ‘저’는 어떠한 대상을 가리키는 지시적인 기능이 거의 없이, 그냥 강조 용법으로 쓰인 말입니다.

(5) ㄱ. 멀리 새가 날아간다.
ㄴ. 멀리 많은 차량이 오가는 국도 위는 아직 대낮에 속했다.

(4)에서 ‘저’를 생략하고 (5)처럼 표현했을 때도 두 문장의 의미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4)의 ‘저’는 지시적인 기능보다는 정감적인 기능(강조 기능)으로 쓰인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4)의 ‘저’가 지시 기능이 없이 정감적인 강조 기능으로 쓰였다는 점에서 ‘저렇게’의 뜻으로 쓰인 부사로 처리하는 것이 좋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6) ㄱ.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
ㄴ. 그(렇게) 추웠던 겨울이 지나고 이제 따뜻한 봄이 왔네.
ㄷ. 저(렇게) 지독한 히틀러의 만행을 어찌 잊으랴?

(6)에서 ‘이, 그, 저’ 또한 정감적인 강조 용법으로 쓰인 말이므로, ‘이렇게, 그렇게, 저렇게’나 ‘이토록, 그토록, 저토록’과 같은 지시 부사의 변이 형태로 처리하여서 부사로 처리하는 것입니다.
규범 문법이 모든 언어 현상을 다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규범 문법이 해결할 수 없는 (5)와 같은 표현을 설명하는 한 방법으로 ‘그’를 정감적인 강조 표현으로 보아서 부사로 처리하는 것을 시도해 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