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다 보면 자기 자신이 어떻게 이렇게 멍청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들이 있게 마련이다. 나는 ‘내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공동 연구 때문에 여름 방학을 이용해 미국에 있는 메릴랜드 대학에 갔다. 한 달 정도 있으면서 논문을 완성하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숙소는 학교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잡았고, 학교 셔틀버스를 이용했다. 학교 연구실과 숙소를 오가는 단순한 일상 중에서 가장 신경이 쓰였던 것은 셔틀버스 시간에 맞춰서 버스정류장에 나가는 것이었다. 한번 버스를 놓치면 한참을 기다려야 다음 버스를 탈 수 있었고, 숙소로 가는 막차를 놓치면 정말 난감했다. 숙소가 학교에서 가깝다고는 하지만, 걸으면 한 시간 이상 걸리는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친절한 미국 사람이 자기가 얼마 전에 새 차를 뽑아서 예전에 타던 자동차가 놀고 있으니, 한 달 동안 이용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전화를 주셨다. 너무 오래된 차라서 불편할 텐데, 그래도 괜찮으면 타라고 하셨다. 자동차가 없으면 껌 한 통 사러 가기도 힘든 나라에서 갑자기 발이 생긴 것이라,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자동차와 열쇠를 받았다. 정말 오래된 차라서 문도 반드시 열쇠로만 따야 하고, 꼭지 같은 것을 눌러서 닫는 차였다. 에어컨도 안 나오고 수동이어서 운전하는 데 불편하기도 했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막차 시간 때문에 초조해하지 않고, 늦은 시간에도 숙소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열려 있는 다른 문을 보지 못하는 이유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늦게 일이 끝나서 숙소로 가는 길에, 다음 날 아침에 먹을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이언츠라는 대형 마트가 있는 쇼핑몰에 갔다. 이미 너무 늦은 시간이어서 문을 닫기 직전이었는데, 다행히도 빵과 우유 같은 간단한 것들을 사가지고 자동차로 돌아왔다. 그런데 문을 열려고 주머니에서 열쇠를 찾는데, 아무리 찾아도 열쇠가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바로 그 순간 운전석의 창문을 통해서 자동차 열쇠가 차 안에 그대로 꽂혀 있는 것이 내 눈에 너무 선명하게 보였다. 그러고 난 후에 바라본 문의 꼭지도 잠김 상태로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을 열어보았지만, 문은 꿈적도 하지 않은 채 굳게 닫혀 있었다. 남의 차를 타면서 도난을 당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문의 꼭지는 늘 의식적으로 꼭꼭 닫고 다녔던 것이다. 도움을 요청하러 쇼핑몰로 갔지만, 이미 가게들은 문을 닫았고, 경비원들에게 부탁했더니 자신들은 문을 열지 못한다는 대답뿐이었다. 다행히도 나 같은 사람들이 꽤 있어서, 자동차 문을 열어주는 것을 아르바이트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전화번호를 찾아주었다. 휴대전화도 없었기 때문에, 경비원 사무실 전화를 이용해서 몇 군데 전화를 했다. 하지만 오늘은 일거리가 많아서 내가 있는 곳까지 오지는 못한다는 답변뿐이었다.
그러던 가운데 한 명이 이 근처에 일을 보러 가는 중인데, 시간이 되면 들르겠다고 답변했다. 주변은 깜깜했고,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드넓은 쇼핑몰 주차장에는 다른 차가 두세 대밖에 없었다. 강도를 만나도 도움을 청할 곳은 아무 데도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 시간이 되면 들르겠다고 한 이 사람이 과연 오기는 오는 것일까, 와서 문은 안 열고 갑자기 총이나 칼을 들이대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들이 계속 교차되었다. 그리고 한 30분 뒤에 차 한 대가 나타났다. 다행히도 그 사람은 총 대신에 문을 여는 긴 쇠꼬챙이를 꺼냈다. 그리고 내 차로 오더니 바로 운전석 문을 열지 않고, 조수석 쪽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고민을 하는 듯하더니, 솔직히 말해주겠다고 했다. 차 문은 안 닫혀 있다고. 그러면서 조수석 문을 바로 여는 것이었다. 조수석 쪽의 꼭지는 잠그지 않고 내렸던 것이다. 문을 열었다는 안도감보다는 감당할 수 없는 창피함이 몰려왔다. 운전석의 닫힌 문만 보고, 열려 있는 조수석 문은 보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그 법석을 떨었던 것이다.
닫힌 문에 더 가까이 다가가 힘만 빼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자
그 이후로 자동차 열쇠를 꼽아둔 채로 문을 닫고 내린 기억은 없다. 하지만 열려 있는 문은 보지 못하고 닫혀 있는 문만 바라보는 것은 우리 인생에서 생각보다 자주 일어나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의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 그러나 흔히 우리는 닫힌 문을 오랫동안 쳐다보고 있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열려 있는 다른 문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다.” 헬렌 켈러가 했던 이 말이 마음에 와 닿는 이유 중의 하나는 나중에 돌이켜보면 너무나도 환하게 열려 있던 것이 분명하게 보이는 행복의 다른 쪽 문을 당시에는 보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행복이라는 자동차에 오를 수 있는 문에는 운전석 문만 있는 것이 아니고 조수석 문도 있는데, 우리는 닫힌 운전석 문만 바라보다가 좌절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행복의 다른 쪽 문을 쉽게 발견하지 못하는 것일까?
한 가지 이유는 우리가 닫혀 있는 행복의 문을 열기 위해서 문에 너무 바짝 다가서 있기 때문이다. 잠긴 문을 열기 위해서는 당연히 잠겨 있는 문 앞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 문고리를 잡고 문을 열기 위해 힘을 써야 한다. 아직은 닫혀 있는 행복의 문 또는 성공의 문을 열기 위해서 땀 흘리며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이 아름다운 모습이 안타까움과 애처로움으로 변하는 것은 닫힌 문이 미동도 하지 않고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이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이 채택하는 방법은 닫힌 문을 향해 더 가까이 다가가서 문고리를 더 꽉 잡고 남은 힘을 다해 문을 앞으로 당기는 것이다.
문제는 문 앞으로 다가갈수록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닫혀 있는 문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계속해서 문을 잡아당기기만 하면 힘은 점점 더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씩은 문고리를 놓고 닫힌 문에서 몇 발짝 뒤로 물러설 필요가 있다.
그러면 이제는 닫힌 문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옆에 있는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조금 더 뒤로 걸어가면 이미 열려 있는 행복의 다른 쪽 문을 발견하는 행운을 잡을 수도 있다. 행복의 다른 쪽 문을 보지 못한다고 해도, 문고리를 놓고 쉬는 동안 우리는 다시 문을 열어젖힐 수 있는 힘을 얻게 되고, 문을 열 수 있는 다른 아이디어를 찾아낼 수도 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행복으로 가는 가장 성실한 방법이다. 하지만 가끔은 일상으로부터 떨어져서 자신을 바라보고 쉴 수 있는 기회를 우리 스스로에게 주어야 한다. 일상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켜 주는 것은 성실성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드는 힘을 주고, 동시에 행복의 다른 문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전우영│충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심리학의 힘 P: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11가지 비밀>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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