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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마을 시집을 만드신 김재형 선생 이야기- 퍼온글

후쿠시아 2013. 10. 5. 16:50



[시] 소 키우는 시골사람들 시인 비웃다
전남 곡성군 죽곡마을시집 ‘소, 너를 길러온 지 몇 해 이던고’ 펴내
최경호 글꾼(inpapa2002@hanmail.net)
ⓒ 강빛마을

참 별난 사람들이 사는 동네였어요

집도 참 이상한 집이어서

가만히 다시 보니 그건 집이 아니라

한 채의 시였어요

그래요, 시 한 채가 죽곡천변에 피어있는 거죠

그래서 죽곡천은 그 아름다운 시들을 어떻게 하면

섬진강으로 실어 나를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었다는군요

……

압록의 새들도 시를 쪼아 먹고

앞강 은어들도 시를 물고 다니게

가서 섬진강을 시의 강으로 만들자 -머리시 백무산 ‘죽곡천변에는 예쁜 시집 한 채가 서 있어요’ 몇 토막

전남 곡성군 죽곡면에서 살고 있는 시골사람들이 마을시집 <소, 너를 길러온 지 몇 해이던고>(강빛마을)를 펴냈다. 이 시집에는 88살 할머니에서 7살 어린아이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쓴 시와 죽곡마을 시문학상 수상작을 비롯한 114편이 논밭으로 울려 퍼지는 소울음처럼 정겹게 실려 있다.

이 시집에는 민중시인 백무산 머리시와 조은산 시인 축하시도 들어 있다. 책 끝자락에는 여행작가 유성문이 쓴 죽곡이야기 ‘죽곡, 죽곡사람들’이 실려 있으며, 보성강과 섬진강, 태안사 등을 끼고 있는 곡성군 죽곡면에 대한 소개와 함께 이 시집에 시를 쓴 죽곡사람들 이야기와 시보다 더 애틋한 사연들이 담긴 사진을 실었다.

‘자연과 함께, 농사지으며’, ‘하늘논 쌓는 마음’, ‘우리 집 살구나무에 대해서’, ‘내 고향 되었다네’, ‘서정 하나-흐르는 강물처럼’, ‘아버지의 은어낚시’, ‘서정 둘-사라진 안개처럼’, ‘안개, 소리 없이 사라진 너를’, ‘삶의 이야기, 이야기가 된 시’, ‘회억’, ‘어린이 시-애국가는 어렵다’, ‘청소년 시-나의 시를 쓰고 싶다’, ‘나의 시’ 등이 그 시편들.

“올해 논에다 콩 심었더니 / 거름이 너무 많아 키가 커서 / 베어줄까 걱정을 했는데. / 마침 노루가 들러 적당히 끊어 먹어서 / 올해 콩 농사는 풍년 들겠네.” -정계순(70세) ‘밭농사’ 몇 토막

“한여름 뙤약볕에 고추밭을 맨다. / 봄부터 시작된 풀매기는 끝도 없이 이어진다. / 아~ / 고랑이 저만치 도망가 있다. / 축지법을 써서 매어도 힘겨울 판에 / 엿가락 늘어지듯 고랑이 늘어났다.” -김현지(45세) ‘풀매기’ 몇 토막

“애국가 / 1절부터 4절까지 / 도대체 무슨 말인지 / 하나도 모르겠다 // 사랑 ‘애’ / 국가 ‘국’ / 노래 ‘가’ // 나라를 /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르는 노래 // 그런데 왜 나는 / 그런 마음이 하나도 안 생기지?” -최호원(8세) ‘애국가는 어렵다’ 모두

태평리에서 살고 있는 최태석 씨는 올해 환갑을 맞았다. 최 씨는 농촌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평생 농사를 짓고 있다. 어릴 때 서당 훈장이었던 할아버지로부터 한문을 배웠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는 동안 잊고 살았다. 그는 이번 마을시집 시 공모에 한시를 쓰는 것을 시작으로 시 사랑에 포옥 빠져 있다.

養牛由來歲月深 너를 길러온 지 몇 해이던고

石田耕牛深時間 돌투성이 밭갈 때가 언제이던가

牆?不知何歲月 담벼락에 세워둔 쟁기는 언제 쓰려는가

歲月流去銹故障 세월이 가는 동안 녹이 슬고 말았네 -최태석 ‘牛-소, 너를 길러온 지 몇 해이던고’ 몇 토막

유봉리 김드보라는 아버지 얼굴을 잘 모른다. 어머니마저 타지로 떠돌아 같이 지내는 날이 드물지만 할머니 보살핌 속에서 씩씩하게 살아간다. 김드보라는 할머니를 사랑하고, 학교에서 친구들과 노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드보라가 외로운 가운데서도 기대며 살아가게 해주는 곳, 그곳은 곧 고향인 시골마을이 두 팔 벌려주는 넉넉한 품이다.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같이 / 김밥을 나누어 먹었는데, // 친구들 김밥보다 우리 할머니께서 / 싸주신 김밥이 제일 맛있었다.” -김드보라(9세) ‘소풍, 할머니의 김밥’ 몇 토막

죽곡마을에서 시집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죽곡농민열린도서관이 있어서다. 죽곡농민열린도서관은 지난 2004년 곡성군농민회 죽곡면지회 회원들이 집에 있는 책 몇 권씩을 들고 와 농민문고를 만들면서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이 도서관은 2006년 책읽는사회국민운동본부와 삼성문화재단, 한겨레신문이 함께 연 ‘희망의 작은 도서관 만들기’ 사업에 뽑히면서 지원받은 1억 원과 곡성군이 힘을 보태 마을도서관으로 거듭났다.

“이곳엔 / 책을 빌릴 수 있는 / 바코드가 없다. // 이곳엔 / 청소년들이 즐겨 읽는 / 로맨스 소설이 없다. // 하지만 이곳엔 / 바코드 없이도 빌려다가 / 갖다놓을 수 있는 / 사람들의 양심이 있다. // 그리고 이곳엔 / 행복을 나눌 수 있는 / 책들과 영화가 있다.” -류혜리(16세) ‘죽곡농민열린도서관’ 모두

이 마을사람들은 농민도서관 개관을 준비하면서 죽곡농민회 카페를 만들었다. 그 카페에 하나둘 지역 농민들이 쓴 글이 올라오면서 가끔 ‘시’가 올라오기도 했다. 그때 도서관 개관을 준비하던 김재형 현 죽곡농민열린도서관 관장이 이 시들을 눈여겨보았다. 2010년에는 마을도서관이 농촌청소년공부방 지정을 받으면서 정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게 되었다.

이 농민도서관 사업은 전남문화예술재단에서 펼치는 문화사업 공모에도 당선이 되어 100만 원이란 지원금까지 받았다. 김재형 관장은 이를 바탕으로 ‘죽곡마을 시문학상’ 공모를 거쳐 작품을 모았다. 여기에 죽곡면사무소에서 도움을 주면서 마침내 마을시집이 태어날 수 있었다.

방송인 손석희(성신여자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시집을 준비한 김재형 선생을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두 번 모셨다. 죽곡마을을 한 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김 선생이 그 마을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몸에 담아 오셨다. 청취자들이 너무나 좋아했음은 물론이다”라고 말문을 연다.

그는 “시 쓰는 마을이라…. 정말 있기나 한 걸까? 이 시집은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이다. 책 속엔 처음 시집을 낸다고 했을 때 주민들이 헛웃음을 쳤다고 쓰여 있던데 그 의미를 알 것도 같다”라며 “뭐 시집 내려고 시 썼나…. 그렇다. 그래서 이 시집이 더 소중하다. 그 어떤 세속의 목적도 없이, 그저 삶 속에서 체화된 단어들이 얼핏 무심하게 모여 들어 이렇게 빛나고 있다”고 적었다.

2012-01-10 14:52:40 수정 최경호 글꾼(inpapa20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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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FS-행복, 자유 그리고 봉사
글쓴이 : 바쁜일멈추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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