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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위대한 스승 - 공자의 탄생

후쿠시아 2012. 10. 8. 10:00
 

공자의 탄생


중국에서 공자라고 부르는 까닭은 성이 ‘공(孔)’씨이기 때문이며, '자(子)"자는 선생님이라는 뜻의 존칭이다.  맹자(孟子)나 노자(老子)의 자(子)도 선생님이라는 뜻으로 가르침을 일컬어 맹자왈(孟子曰), 노자왈(老子曰)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공자(孔子)는 가장 위대한 스승이므로 논어나 명심보감에서는 공자님 가르침을 공자왈(孔子曰)이라 쓰지 않고 자왈(子曰)이라고  높여 부른다.

공자는 기원전 551년에서 기원전 479년까지 일흔세 해를 살았다.

공자는 주나라의 여러 제후국 가운데 약소국인 노나라 창평향의 추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곳은 지금의 산동성 곡부에 해당 한다. 본래 노나라는 주나라 초기의 공신인 주공의 후손에게 주어진 땅이었다.

공자가 꿈에도 그리던 인물은 주나라의 문물제도를 완비하여 통치 기반을 다진 주공이다. 따라서 곡부는 비록 작은 땅이기는 해도 상당한 문화수준을 가지고 있었다고 본다.

공자사상의 성립은 이러한 문화적 토양과 무관하지 않았다.

공자의 집안은 몰락한 귀족이었고, 아버지 숙량흘은 하급 무사였습니다. 공자의 출생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전설이 있다.

공자의 아버지는 튼튼한 자식을 갖고 싶어서 뒤늦게 안징재라는 여자에게서 공자를 얻었다고 한다. 그때 숙량흘은 70세가 넘었고, 안징재는 나이 어린 소녀라 생각된다.

이러한 나이 차이로 사마천은 공자의 출생에 대해 '야합해서 낳았다(野合而生)'고 하였습니다. 야합이란, 말 그대로 들에서 합쳐 태어났다는 뜻이다. 이는 정상적인 관계가 아니었음을 말한다. 그래서 공자는 사생아였다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런데 예전 중국학자들은 차마 공자를 사생아라고 할 수가 없어서 온갖 주장을 통해 미화하려고 하였다. 즉 어머니가 이산에 기도를 드려 공자를 낳았다고도 한다.

공자의 머리 가운데는 들어가고 나온 울퉁불퉁한 모습을 보여 이름을 구(丘:언덕)라고 했다고 한다.

공자에게는 10명이라고도 하는 많은 누나들과 몸이 성치 못한 형이 있다고 한다. 공자가 성인이 되었을 때 붙여진 또 다른 이름이 중니(仲尼)인데, 중(仲)은 둘째라는 뜻이며 니(尼)는 앞에서 말한 니구산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무인이었던 공자의 부친은 그가 세 살 때 돌아가시고, 모친은 그가 24세 때 세상을 떠나 가난하고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불우한 환경 때문에 공자는 15세가 되서야 교육을 받을 수 있었으나 학문에 있어서만은 누구 못지않은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공자는 19세 때(B.C. 533년) 견관씨의 딸과 혼인하여 다음해 아들 리를 낳았다. 그는 결혼하던 해에 벼슬길에 나아갔다.

사회에 나가 젊은 공자는 정원을 관리하고 가축을 돌보는 일도 했고, 창고에서 물건을 내주고 받는 일을 하기도 했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공자가 가축을 돌보는 일을 했을 때 가축들이 살지게 잘 자랐고, 노나라 계씨의 창고 출납을 맡았을 때 셈이 정확했다고 했다.

공자의 이런 경험은 백성들의 어려움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공자가 살던 당시는 주나라 초기로 굳건했던 신분제도가 크게 흔들리는 혼란의 시기였다.

이러한 어려운 시기 공자는 지금도 인간관계에서 지배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의 탄생이 사생아라 해서 그의 위대성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보통 사람으로서 역경을 극복하고 일어선 점에서 위대성은 돋보인다.

출처 : 교사의 카페
글쓴이 : 김완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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