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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故 단원 김홍도(金弘道)의 그림들 4

후쿠시아 2014. 2. 23. 22:13

 

故 단원 김홍도(金弘道)의 그림들 4

 

 

 

 

 

故 김홍도(金弘道 · 1745年 ?)는, 조선 후기의 화가이다.

본관은 김해자는 사능(士能) · 호는 단원(檀園) · 단구(丹邱) · 서호(西湖) ·

고면거사(高眠居士) · 취화사(醉畵士) · 첩취옹(輒醉翁)이다.

안산시 단원구는, 그의 호 단원을 따온 이름이다.

정조시대 때, 문예 부흥기의 대표적인 화가로 여겨진다.

 

그는, 산수화 · 인물화 · 풍속화 등과 주로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그렸으며, 서당 · 씨름 등을 그린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그림만 그린 것은 아니고, 시도 써서 아들 김양기가 출판한 ‘ 단원유묵 ’ 이라는 문집도 있다.

 

 

 

 

故 정조는, 자신의 문집인 ‘ 홍재전서 ’ 서 故 김홍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었다.

김홍도는 그림에 솜씨 있는 자로서, 그 이름을 안 지가 오래다. 삽십 년쯤 전에 나의 초상을

그렸는데, 이로부터 무릇 그림에 관한 은 모두 홍도를 시켜 주관케 하였다. ”

이러한 활발한 작품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소금장사로 부를 축적한 김한태

(김경림)에게 그림을 그려주는 대신, 경제 지원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했었다.

18세기 상업의 발달로 부유해진 중인 계급은, 그들의 경제계에서의 위치 성장에 걸맞은

예술적인 취향을 故 김홍도처럼 유능한 화가들과 교류함으로써 충족시키려고 했었다.

그러나 1800年, 故 정조가 갑작스럽게 승하한데다가 정확한 시기를 알 수는 없지만

김한태도 별세해, 그는 후원자들을 모두 잃곤 생활이 어려워졌었다.

1805年, 질병으로 위독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언제 별세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의 아들 김양기도, 아버지를 이어 화원이 됐었다.

 

 

 

 

 

     소림명월도 · 병진년화첩 · 1796年

 

   
 

 

하화청정(연꽃과 고추잠자리)

 

 단원은, 사생할 때에도 초상화나 풍속화를 그리듯 섬세한 필치를 동원했었다.

연잎 묘사에서는, 서양화의 음영 기법을 도입한 흔적이 보인다.

 

 

빨래터 

 

냇가에서, 빨래하는 아낙네의 모습과 바위 뒤에서 몰래 훔쳐보는

선비의 모습이 강한 해학성을 드러내고 있다.

 

  

우물가 

 

‘ 빨래터 ’ 에서, 남정네가 여인네들의 생활을 훔쳐보듯이

‘ 우물가 ’ 에서도 비슷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다.

가슴을 풀어헤친 한량의 장난끼 어린 표정과, 두 여인이 남정네의 가슴을 피한 자세 · 나이 든 아낙이

우물에 오다가 그 광경을 보고 주춤하면서 불만스레 외면하는 몸짓 등이 해학미가 넘친다.

  

  

자리짜기

방 안에서 돗자리를 짜고 있는 남편과, 물레를 돌려 실을 잣고 있는 아내 ·

뒤편에서 책을 펴놓고 글자를 막대기로 짚어가며 글을 읽고 있는 아들.

 

모두 각자의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평범하고도

푸근한 한 가족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점괘

 

노상에서, 한 승려는 꽹과리를 두드리고 한 승려는 목탁을 두드

리면서 염불하며 점괘로 길흉을 보는 장면이다.

이런 승려 풍속도는, 18세기 후반 풍속화에 와서 흔히 다루어졌던 소재이기도 하다.

한 부녀자가, 전대에서 돈을 꺼내는 모습과 한 여인은 긴 장죽을 들고 있는

것으로 봐 당시 일반 아녀자도 담배를 피운 것으로 보인다. 

 

 

주막 
 
 

 

장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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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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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보리 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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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의풍류도(布衣風流圖)

 

‘ 종이창에 흙벽 바르곤, 이 몸 다할 때까지 벼슬 없이 시가나 읊조리련다. ’

그가 말년에 그린 그림을 보면, 세속과 담을 쌓은 듯한 초탈함이 잘 드러나 있다.

출처 : 朴英才의 文學 blog
글쓴이 : 박영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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